대책없이 떠나는 민다나오 여행 (6) - 키다파완으로.. 친구를 찾아서(2), Kidapawan City, North Cotabato.

민다나오 여행 사흘째 날을 맞았습니다.
내일이면 앙헬레스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행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오늘은 사흘 일정중 가장 난이도 있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다바오 시티를 벗어나 코타바토 주로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민다나오 정세가 아무리 불안하다고 한들, 다바오 시티는 걱정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다바오 시티를 벗어나 여행을 간다면? 현지인들 조차 글쎄...라고 고개를 갸웃할겁니다.

솔직히 사전 정보가 너무 없어서 정확한 상황파악이 안되기 때문에, 이곳을 가기전에 저도 살짝 망설인 것이 사실입니다만,
이왕 온 여행에 겁먹고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독한(?) 맘먹고 다녀온 북 코타바토 주, 키다파완 여행기를 아래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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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파완을 가려는 이유는 그곳에 나름 오랫동안 알고지내온 친구가 한명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부나완 처자와 마찬가지로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만, 꽤 오래 알고 지내온 사이라 이번에 다바오에 갔을때 꼭 한번은 얼굴을 보고와야지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마침, 그 처자가 사는 곳에는 Lake Agco라고 하는 유명한 화산 호수가 있기때문에, 그곳을 둘러볼 겸 하루 일정을 이곳에 다녀오는 것으로 잡았죠.

제가 가야하는 곳은 북 코타바토주, 키다파완 시티로 다바오 시티에서는 버스로 3시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코타바토하면 원래 코타바토 시티를 떠올리는게 보통입니다만, 코타바토 주는 코타바토 시티 주변으로 꽤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키다파완 시티는 북 코타바토 주의 주도로서, 아포산 자락에 위치한 행정중심지인데, 실제 구글에서 키다파완 시티를 검색해보면 교도소 습격사건이나 농민 시위 유혈진압 기사 같은 것만 잔뜩 떠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더군요. 헐~  -_-;
 
위 사진이 실제 제가 다녀온 경로입니다. 



다바오에서 키다파완으로 가기 위해서는 에코랜드(Ecoland) 터미널로 흔히 불리는 다바오 시티 오버랜드 터미널로 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키다파완 혹은 코타바토 시티로 가는 민다나오 스타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터미널에는 어김없이 지명수배된 테러리스트 명단이 걸려있어 지나가는 여행객의 마음을 잠시 쫄게(?) 만듭니다. ^_^;



에코랜드 터미널은 2열로 버스들이 늘어서 있는데, 하나는 다바오 북쪽으로 가는 버스들이고, 나머지 하나는 다바오 남쪽으로 가는 버스들입니다.

위 사진은 다바오 북쪽, 카가얀 데 오로 방향으로 가는 버스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아구산, 수리가오, 카가얀 데 오로, 심지어는 사진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PhilTranco를 이용해 다바오에서 마닐라 가는 버스를 탈 수도 있습니다.



상행선 버스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맨 앞에 카가얀 데 오로 가는 버스가 보이네요. ^_^
저는 반대로 다바오 남쪽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야하므로, 맞은편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키다파완으로 가는 민다나오 스타 버스입니다. 버스에 키다파완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있으므로 찾기 쉽습니다.

이쪽 열에는 다바오 남쪽, 젠산이나 서쪽 코타바토 시티로 가는 버스들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버스 안에서 저를 막 부르더니 자기 포즈취할때 찍어달라고 굳이(?)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그 버스가 제가 타고 가야 할 키다파완행 버스... 헐~.

나중에 찍은 뒤에 제가 바로 버스에 올라타니 그 아저씨 박장대소를 하면서 옆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기사들과 즐겁게 수다를 떱니다.
해당 버스 노선에 외국인이 타는게 요즘같아서는 흔히 있는 광경은 아니라 아마 많이 재미있었나 봅니다.

여담이지만 전 이때 이번 여행이 그리 걱정할만한 것은 아니구나.. 어렴풋이 직감을 했습니다.
만약에 현지사정이 정말 외국인에게 심각한 수준이면 버스기사들이 저렇게 즐겁게 외국인을 대할 수 없었겠죠. 



키다파완행 버스 표입니다.
소요시간은 평균 3시간이고, 요금은 위 사진에도 나오듯이 1인당 130페소입니다.
왼쪽이 키다파완으로 갈때, 그리고 오른쪽이 다바오로 돌아올때의 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드디어 버스가 출발합니다.
당일치기로 가는 여행이라 출발시각을 꽤 일찍 잡았습니다. 그래야 밤늦기 전에 다바오 시티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이쪽 노선 버스의 특징은 지정된 정류소 없이 해당 방향으로 가는 승객은 어디서든 태우고 내리고 아주 친절하게(?) 정차를 하더군요.
덕분에 버스 운행시간은 점점 길어져 하세월이 되어가지만... ㅎㅎ

버스 상태는 꽤 청결하고 양호했습니다. 이용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어요.



다바오 시티에서 중간 정차지 디고스 시티까지는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는길이라 저렇게 해변을 보면서 갈 수 있습니다.
저 길따라 Sea Oil 저유소나 산미겔 다바오 공장 같은 대형 산업시설들이 들어와 있기도 합니다.



다바오 남쪽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 포장이 되어있지만 가끔씩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곳들도 곳곳에 눈에 띕니다.

기존의 2차선 도로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계속 진행중인데, 이게 진행중인 상태에서는 계속 지체를 유발하는데다가, 그 공사속도 또한 느릿느릿이기때문에, 이 길을 운행하는 차량들의 속도는 만성적으로 느려질 수 밖에 없더군요.



한참을 달렸나 싶은 와중에 잠시 정차한 디고스 시티 터미널입니다.
이곳에서 젠산 가는길과 코타바토 가는길이 갈라지죠.
평일 오전이었는데, 아주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였네요.

민다나오 스타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버스 운행 중간중간에, 사진에 보이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관리자들이 끊임없이 승차해서 버스 승객을 점검한다는겁니다.

아마도 기본적으로는 버스 승객 수와 끊은 표 수를 비교점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부차적으로는 버스의 안전과도 관련이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과거 언론기사를 찾아보면 이 노선 버스가 털렸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면에서 유사시를 대비해 운행 중간에 끊임없이 버스 승객을 확인, 관찰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화창한 하늘과 함께한 디고스 터미널 주변 입니다.



디고스 시티를 출발한 버스가 다시 키다파완을 향해 달립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기존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계속 진행중이었습니다.



한참을 달린 버스는 다시 소도시 반살란(Bansalan)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하늘이 정말 화창하고 쨍~해서 비록 덥긴 하지만 여행하기에는 참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런 조용하고 평안한 곳이 정말 뉴스에 나오는 문제의 땅이 맞는가 가끔 의심이 들기도 하더군요.



키다파완 시티 근처에는 아직 확장이 되지 않은 도로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도로는 공사때문에 차가 막히는 일이 없어서 오히려 차가 더 잘 나간다는...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아니나 다를까, 또 윗 사진같은 공사현장이 나옵니다.
일반 도로를 확장하는건 그나마 양반이지만, 2차선이었던 교량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건 장난이 아닌지라, 다리 주변에서는 위 사진과 같은 광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3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어느덧 키다파완 시티에 들어섭니다.
키다파완 시티는 한 주의 주도답게 나름 도시 기반 시설인 도로나 기타 환경이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는듯 보였습니다.



드디어 목적지인 키다파완 시티에 도착했습니다.
키다파완 버스 터미널의 모습인데, 나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고 여러 버스들이 들고 나기를 반복하고 있었네요.



이제 버스터미널에서 목적지인 키다파완 시내로 들어가야 합니다.
버스터미널에는 하발하발(여기서는 트라이시클을 하발하발(Habal-Habal)이라고 부릅니다)이나 모터바이크 기사들이 상주해 있는데, 
이를 이용해 시내 목적지까지 이동하면 됩니다.

보통 마닐라나 앙헬 같은 경우 버스터미널 옆 기사들은 정말 질이 안좋은 경우가 많은데..
다바오 시티에서의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 모터바이크 기사를 사전 요금 질문 없이 이용해 봤습니다.

나 : "키다파완 시내까지 어떻게 가야하나요?"
모터바이크 기사 : "혼자면 그냥 이거 타고 가슈"

그렇게 모터바이크 뒤에 타고 한 10분 조금 못달렸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나 : "얼만가요?"
기사 : "10페소요"

다바오 시티 뿐만 아니라 민다나오 모든 대중교통 기사들을 찬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ㅋ



찾아보기로 한 친구가 일하는 키다파완 시티내 KMCC 몰입니다.
이 아가씨 나름 여기서 일한지 꽤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몰 크기가 SM이나 GMall처럼 그렇게 거대하지는 않아 그나마 저번 부나완 처자보다는 조금 쉽게 찾을 것 같기도 하네요. ㅎㅎ



KMCC 몰은 단층으로 구성된 조그만 로컬 몰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몰이라 많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어 여기서 특정인을 찾기는 또 쉽지 않더군요.

한참을 찾다가 갑자기 허기가 몰려옴을 느꼈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도 아침 5시 반부터 버스 안에서 10페소짜리 땅콩 한봉지 외엔 먹은게 없네요.. -_-;
몰 안에 있는 로컬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뭐라도 먹어보자 싶어 열심히 먹어제꼈습니다. ㅎㅎ
필리핀 음식 메뉴 세가지인가를 시켜놓고 정신없이 먹었네요.

그렇게 먹다보니... 어느샌가 여기 사람들이 저를 또 신기한듯이 보고있다는걸 발견했습니다.
외국인 보기 힘든 촌동네에서는 제가 서있는것만으로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더만요. ㅎㅎ  

뭐하는 넘인지 모를 한국인이 계속 서성거리다가 허겁지겁 로컬 밥을 먹고 있으니 신기하지 않겠습니까. ^_^
옆 테이블 고딩들도 쳐다보고, 저쪽 길 지나가는 아줌마도 쳐다보고.. 식당 아줌마는 말할것도 없고... ㅎㅎ

그렇게 밥을 먹고, 위 사진에 나오는 45페소짜리 할로할로 까지 먹고 나니 좀 기운이 들더군요.

기운을 차려 다시 몰을 뒤져보기 시작합니다.
전에 대화할적에 이 아가씨 일하는 곳이 옷가게라고 얼핏 들은 적이 있어 의류매장 쪽을 중점적으로 찾아보다가...

어느 의류매장 한쪽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 그 아가씨를 발견했습니다.
(오늘의 미션 성공~!)

그 아가씨에게 다가가 제 소개를 하니, 한동안 멍하니 저를 쳐다보다가 기겁을 하고 놀라네요. ㅎㅎ
설마 외국인이 이 동네까지 찾아올줄은 꿈에도 몰랐던거죠.

한참 바쁘게 일하던 중이라 길게 방해하지 못하고, 잠깐 10여분 동안 짤막한 대화를 나누고, 기념품 몇가지를 전달해주고 왔습니다.
그 아가씨 저를 외국인 행세하는 필리피노인줄 알았답니다. ^_^ 늘 저를 진짜 한국인 맞나 의심했었거든요.
덕분에 외국인 맞다는거 증명도 해주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웃으며 오해도 풀었습니다.

외진 곳까지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고.. 일하는 중이라 챙겨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고 배웅하던 순간까지 미안해 하던 처자..

그 순한 마음을 120% 느낄 수 있었기에 더욱 짧았던 만남이 긴 여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맛에 사람 찾아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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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이 25살, 북 코타바토 주 키다파완 시티 조그만 몰에서 일하는, 억척스럽지만 올곧은 마음씨를 가진 처자입니다.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혼자서 어린 동생 넷인가 다섯을 보살피며 사는 소녀가장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처자 무슬림입니다.

원래 히잡을 쓰고 있어야 하지만 근무시간에는 히잡금지라고 주인이 지침을 내려서 히잡 안쓰고 근무중인 사진입니다.
이 처자 덕분에 민다나오 무슬림이 대략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생활방식으로 사는지 많이 이해하게 되었네요.

적지않은 나이인데도 학업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올 8월에는 반드시 대학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악착스레 돈을 벌고 있는 바른 마음씨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원하시는 19금 스토리는 아쉽지만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필리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어떤분이 말씀하신 한 구절을 인용하며 갈음할까 합니다.


"민다나오에서 무슬림 여자 잘못 건드리면 죽거나, 아니면 데리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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